[빅풋의 영국이야기] 성공회

국 국교회라고도 하는 성공회는 1534년 헨리 8세가 가톨릭 교회와 손을 끊고 스스로 성공회 수장이 됨으로써 영국의 국교가 되었습니다.

한때 열렬한 로마 교황의 추종자였던 헨리 8세는 결혼을 6번이나 하였는데,

자신의 결혼과 이혼 문제에 로마 가톨릭이 개입하고 교황청과 대립하게 되자 가톨릭에서 분리하여 성공회를 영국의 국교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가톨릭 교도인 첫 왕비 케서린의 딸 메리가 왕위에 오르자,

그녀는 광신적인 가톨릭교도여서 아버지가 세운 성공회를 부정하고 교황권을 재확인하여 잉글 랜드를 다시 가톨릭 국가로 되돌리려고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성공회와 신교도들을 무차별 학살하였고, 그래서 퀸 메리를 ‘피의 메리’라고 불리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1558년에 메리 여왕이 자녀 없이 죽자, 왕위에 오른 것은 헨리 8세와 두 번째 부인 앤 불린 사이에서 난 딸 엘리자베스 1세였고,

그녀는 다시 성공회 부활을 선언하고 가톨릭과 신교도를 박해하게 됩니다.

성공회는 헨리 8세에 의해 시작 되었지만 엘리자베스 1세에 이르러 자리를 잡았고, 지리한 종교 분쟁도 막을 내리게 됩니다.

헨리 8세의 이혼 소송과 성공회의 탄생은 명목상으로는 바람둥이 군주의 이혼 문제 때문에 불거진 분쟁이었습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당시의 최강 스페인과 교황의 간섭에서 벗어나기 위한 영국의 정치적인 종교 독립이었으며,

영국 국교회는 국가에 대해 지켜야 할 특정 의무를 지니면서 동시에 특권 또한 부여받습니다.

영국의 왕은 반드시 성공회 교인이어야 하고, 교리를 준수할 것을 약속하며, 모든 성직자들은 왕에게 충성을 맹세한다.

이러므로 중세시대(Medieval time)가 막을 내립니다.

즉 왕의 절대권력이 만들어지며 교황의 자리를 왕이 차지하므로 교황청의 눈치도 허락도 필요가 없어지게 됩니다.

By |2018-12-05T11:05:34+00:008월 24th, 2017|주노칼럼, 커뮤니티|